모스크바도 역시 지하철역이 아름답다.
볼쇼이 극장.
발레를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베르디의 레퀴엠. 사실 그냥 성지순례의 느낌이 강하다. 빈 슈타츠오퍼,
빈 무지크페라인, 베를린 필하모니에도 가봤으니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도 꼭 와보아야 할 것 같아서.
화려하고 크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 늦은 밤이 되었다.
모스크바의 낮과 밤 분위기는 참 다르다. 낮에는 생각보다 밝은 분위기다.
그 유명한 붉은 광장의 크렘린 벽
그리고 맞은편에 저 커다란 건물은 백화점이다. 공산주의의 상징과 자본주의의 상징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니 재밌다.
레닌 묘. 내부는 촬영이 불가능하다.
피의 구원 성당과 꽤나 비슷한 이 곳은 성 바실리 대성당이다. 성 바실리 성당은 500년 가까이 되어가니, 피의 구원
성당이 이걸 비슷하게 만든 것이겠지. 들어가려니까 물품 검사를 아주 빡세게 하고, 오디오 가이드는 러시아어 중국어
두 종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같지 않았다면(사실 도시 역사 자체도 러시아에서 벗어나서
유럽으로 합류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고), 모스크바는 자본주의 물이 많이 든 것만 빼면 정말 딱 생각하던 딱딱한
공산주의 국가 이미지인 것 같다.
학살자 스탈린 묘비. 내가 이 인간에게 유일하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 하나는 쇼스타코비치를 탄압했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를 탄압한 것이 어찌 고마울 수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스탈린은 모더니즘 작품을 탄압했다.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본 스탈린은 '음악이 아니라 혼돈'(직접 말한 건 아니지만 당 기관지에서
이런 표현을 썼으니 스탈린의 의중이 들어간 것이다)라고 했고, 이 이후로 쇼스타코비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그래도 나름 쇼스타코비치 덕질을 하느라 회고록도 읽어보았고, 이를 바탕으로 만든 전기영화 '증언' DVD도 있다.
뭐 이런걸 보면서 내가 생각한 바는, 쇼스타코비치는 겉으로는 '인민의 승리'를 노래하지만, 실제로는 '스탈린에 대한
본인의 승리'를 노래하는 음악을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한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스탈린이 없었으면 내가 사랑하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태어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백화점 내부는 자본주의 그 자체.
붉은 광장 주위로 이런저런 건물들이 많다. 크고 화려한 성당들 사이에, 비교적 소박해보이는 카잔 성당.
실제 예배도 행해지는 성당이라고 한다.
모스크바는 플라네타리움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기계가 돔형 천장에다가 투사를 시켜주는 형태다. 진짜 밤하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차이코프스키 홀에서의 연주. 요것도 성지순례 느낌이었는데, 무슨 공연이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까지 인상깊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이거보다 더 오래된 빈필 베를린필도 잘 기억나는 걸 보면 말이지...
노보데비치 묘지의 쇼스타코비치 묘비. 저 음계는 DSCH(레-미b-도-시), Dmitri SCHostakovich
본인의 이니셜을 딴 본인의 곡에 자주 쓰이는 모티브이다. 첼로 협주곡에서 정말 많이 쓰인다.
그리고 프로코피예프의 묘비도 같이 있다.
러시아에 왔으면 서커스도 보아야지.
동물 서커스는 보면 맘이 아프다. 저 맹수들이 얼마나 맞았으면 저렇게 사람 앞에서 쩔쩔 매는지...
자본주의에 완전히 물든 러시아에, 칼 마르크스의 동상은 뭔가 아이러니해 보인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붉은 광장의 전몰 용사를 기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크렘린 궁전으로..
군인들이 말타고 다닌다. 우리나라는 다들 군대 가니까 군인이 신기하지 않은데,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
차르의 대포와 차르의 종이었나? 아무튼 참 크다.. 둘 다 한번도 쓰인 적은 없는 듯. 종은 화재 때 찬물 부어서 깨졌다나..
밤의 붉은 광장은 백화점만 빛난다.
모스크바강의 야경도 운치가 있다.
마지막 밤, 셀카 한방 찰칵.
남은 루블화는 가져가봐야 환전도 힘들고, 마지막으로 돈지x로 인생에서 처음으로 호텔 룸서비스를 시켜보았다.
뭐 조식뷔페 메뉴를 가져다주는 듯 한데, 그 영화에나 나올법한 접시에 가져와서 뚜껑 열어주고.. 한 번쯤은 할만하더라.
아에로익스프레스 타고 공항으로..
너무 오래된 여행이라 그런가 뭔가 너무 밋밋하다. 사실 뭐 오래된 것 뿐만 아니라,
별 준비않고 간 여행이라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되돌아보자면, 러시아에 대한 생각이 참 많이 바뀌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다 불친절하고 인종차별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의 친절을 많이 받았다. 지하철에서 교통카드 사려고 하는데 판매원이 영어를 못하다보니, 영어를 할 줄
아는 러시아 여성분이 통역을 해주고 갔고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어느 러시아 여성분이 옆에 자리 비었냐고 한국말로 물어보기도 하고(한국어 공부하는
사람이었으려나? 시간이 있었으면 대화라도 좀 해봤을텐데, 공연 시간때문에 그 사람이 커피 받아오기도 전에 나는
나가버렸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길을 찾고 있으니(키릴 문자를 읽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어느 러시아 여성분이 길 잃었냐고
친절하게 물어도 봐주더라. 음.. 어쩌다보니 다 여성분들이네?
아 그리고 당연히 예상했지만 인터넷의 '흔한 러시아 미녀.jpg'는 절대로 흔하지 않다는 것. 우리가 보고 예쁘다고 하는
러시아 여자는 러시아에서도 예쁜 축에 속할거다. 아 그래도 전반적으로 키는 다 크더라. 뭐 나는 키 작은 여자가 좋지만.
그리고 서커스 보러 갔을 때, 별 생각없이 그 전에 마트 들려서 보드카 샀는데.. 생각해보니까 음 좀 그러네.
압수당할 뻔 했는데, 다행히도 담당 직원이 내 짐을 잘 보관해줬다가 나갈 때 돌려주었다.
러시아라는 나라 자체는 좀 딱딱하고 불친절하지만, 그래도 여행 중에 러시아 사람들에게 꽤 많은 호의를 받았던 것
같아서 좋았다.
내가 다시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갈 일이 있을까? 만약에 있다고 하더라도 아에로플로트 타고 모스크바에서 하루이틀 정도 경유는 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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